전체 글 19

반고흐 석양의 버드나무

마침내 잎을 떨어뜨리고 발가벗은 버드나무 저쪽에 석양이 장대한 최후의 빛을 쏘이며 저물어 간다.거기에는 1888년 10월 비극의 직전에 있는 예술가의 마음의 낙일의 상태가그대로 표현되어 있는 듯 하다.네덜란드의 시대에도 간혹그는 나무들 사이 저쪽에 해가 떨어지는 광경을 그렸다.고흐 자신 후일의 편지에서 아를의 수양버들 뒤쪽의 낙일은 네덜란드를 회상시킨다고 말하고 있다.도개교에서나 이 작품에서나 아를 시대의 모티브에 간혹네덜란드 시대의 모티브를 새로운 모습으로 재발견 하게 되는 것은매우 흥미있는 일이다.

카테고리 없음 2025.02.17

반고흐 레스토랑의 실내

점묘주의적 수법을 통한 당시의 많은 작품중에서 이 는고흐가 그린 작품 중에 가장 대표적인 점묘법적 작품이다. 번쩍거리는 색채와 이 기법의 완벽함은 파리 시대의 걸작이라 할수 있고노랑과 연초록, 장미빛을 통한 색조의배합은 조용하고도 환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당시 인상파에 대항하는 신인상파적 보편적 교양을 알려주는그의 역량을 보게 하는 작품이며후일 활짝 피는 색채의 개화를 예감케 하는 작품이다.

카테고리 없음 2025.02.17

반고흐 복숭아나무

이 작품은 고흐가 남불에서 맞은 경이적인 봄의 화사함을 깊은 감동으로 나타낸 그림이다.그는 1888년 2월 21일 에 아를에 도착했다.도착했을 당시 아직 겨울이어서 눈까지 쌓여있었으나그의 예상을 뒤엎고 남불의 봄은 빨리도 왔다.마침내 태양은 서슴없이 지상에 그 빛을 쏟아붓고,꽃이 일제히 피어나고, 그는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리라꽃이 피어날리고 푸른 하늘을 바탕으로 복숭아꽃이 가지마다 가득가득 피는과수원은 아를의 환희를 표현하는데 가장 좋은 모티브였다.밝은 태양빛은 복숭아꽃의 구석구석에 나무가 선 과수원의 바닥에까지 스며들어어두움이 말끔히 사라진 그에게 가득한 행복함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그는 이 기념비적인 최초의 아를에서의 작품을 그가 헤이그에서 그림을 배운종형이자 스승인 화가 모브의 죽음 앞에 바쳤다.

카테고리 없음 2025.02.17

반고흐 측백나무

생 레미에서 발견한 보다 더 중요한 모티브는병원에서 바라보이는 보리밭과 측백나무였다.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측박나무, 배후의 밭이나 산을 고흐는 흡사 그 자신의 마음의 번민과 희망의 상징인 것처럼 응시했다. 대부분 직선에 가까웠던 아를 시대의 필치 대신 휘어 구부러져 서로 대응하는 필치가 화면을 메운다.일종의 바로크화인데 그 장대한 리듬의 집합은, 한그루의측백나무라 할지라도 거대한 마음의 상징물로 변화시킨다.고흐는 비평가 알베르 오리에 에게  [측백나무는 시골 풍경의 전형입니다. 그것은 해바라기에 필적하는 것이고 또한 그 대조이기도 합니다] 라고 쓰고 있다.확실히 해바라기가 아를 시대의 마음의 상징이라면측백나무는 생 레미의 마음의 상징으로 산도 하늘도 대지도 측백나무의 호흡에 맞게 요동한다.

카테고리 없음 2025.02.17

반고흐 고흐의 방

아를 시대에서 노란 조그만 집으로 옮겨간 후,그 집을 예술가의 집으로, 또는 예술가들이 공동 생활의 터전으로 고흐는 꿈꾸고 있었다.실내에는 그의 취향에 알맞는 몇 가지의 가구를 볼수 있다.이것들은 그가 의도적으로 성격이 있는 분위기로 꾸미고 싶었던 생각을 잃게 하여 준다. 침대도 쇠침대가 아닌 농부들이 쓰던 건장하고 커다란 것으로 고르고,의자 역시 무뚝뚝한 농부용의 것으로, 벽면에는 자화상을 비롯하여 수점의 그 자신의 작품이 걸려있고, 그외 가구다운 가구가 없는 소박한 침실은 고흐의 성격과 가난한아를 시대의 생활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아를 시대에 그는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보라, 주황, 여섯색의 기본색을아름답게 대비시키고,  조화시켜 나갔는데,이 화면도 그런 기초색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비극..

카테고리 없음 2025.02.17

반고흐 아를의 고흐의 집

강렬한 푸름과 노랑으로 화면을 2등분 하여 밝은 태양을 만끽하는평화스러운 시골 마을의 인상을 설득력 있게 나타내고 있는 이 작품은그의 조형적인 의도가 뚜렷이 느껴진다.고흐는 1888년 5월에 아를의 역 가까운 라마르티느 광장에 있는노란 집을 빌려 조금씩 손을 대고 가구를 넣어서 9월 부터 옮겨 살았다.고갱을 맞이하여 그의 그 불행한 비극을 일으킨 것도 이 집이었다. [코발트 색의 하늘, 태양의 숨결 속에 자리잡은 집이나 그 가까운 곳.....이 모티브는 어렵습니다.그러나, 기필코 나는 그것을 쏠 만한 것으로 해보이겠습니다.] 바깥은 노랑, 속은 흰색으로 되어 큰 방과 작은 방의 두개를 갖춘이 조그만 집을 빌린 5월에 바로 이사들지 못한 것은동생 테오가 가구에 너무 비용이 들까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카테고리 없음 2025.02.17

반고흐 몽마르트르 언덕의 조망

고흐가 파리에 와서 클리치가의 아파트에 살면서 그리기 시작한 풍경화 속에는몽마르트르의 길, 언덕, 풍차 등 밝은 광선을 흠뻑 받은몽마르트르의 시리즈가 등장한다.어두운 회색조의 풍경이 1886년부터 점차 밝은 화면으로 바뀌고그 다음해에는 신인상파풍의 눈부신 밝음으로 변모하여이미 네덜란드의 침침한 하늘의 어두움은 모습을 찾을수 없게 된다.이 언덕이 지금은 한치의 빈 땅도 없는 시가지로 바뀌었지만당시에는 즐비하게 늘어선 밭 사이로 오두막집 농가들이평화스럽게 자리한 농촌의 정경을 맛보게 하는 교외의 모습이었다.이 작품은 몽마르트르 풍경의 대표적인 것으로넓은 대지를 조망하는 듯, 공간을 크게 설정하는 등큰 구도의 풍경화의 기초를 확립한 것으로 보여진다.경쾌하고 리드미컬한 필치는 대지의 생동감을 더해준다.

카테고리 없음 2025.02.17

반고흐 까마귀가 있는 보리밭

[또 돌아와서 작업에 들어간다.그러나 손에서 붓이 떨어지려고 한다.나는 내가 바라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그러나 다시 3점의 대작을 완성한다.그것은 폭풍의 하늘에 휘감긴 보리밭의 전경을 그린 것으로나는 충분한 슬픔과 극도의 고독을 표현할 수 있었던것 같다.] 테오에게의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오베르의 종말기에 그는 옆으로 길게 된,그에게 있어 새로운 규격의 그림을 시도했다. 지평선에의 넓은 전망에 대한 그의 잠재 의식이 예견한 종말의 의식과 함께,대지가 폭풍 속에서 바다처럼 사납게 일렁이는 거기에까마귀가 활개치며 나르는 불안한 화면을 통하여그는 영혼의 고독과 슬픔을 절규하고 있다. [앞날의 예감도 어둡다. 나는 미래를 행복한 빛속에서 보는 것은 전혀 되질  않는다.]   절망감은 그를 못견디게 하고 ..

카테고리 없음 2025.02.17

반 고흐 해바라기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또 파리에서 아를로조금이라도 더 태양에 접근하려고 따라간 셈이다. 그의 이러한 태양에 향하는 집념은 어쩌면 해바라기를꼭 닮아있었다고도 할수 있을 것이다.그래서인지 그는 아를 지방에서도 여러 점의 해바라기를 그린 작품을 남기고 있고그 결과 해바라기는 곧 고흐의 대명사처럼 되었다.해바라기의 형상이나 색채, 그리고 해를 향하는 성질은 고흐의내면적 원형이라 할수 있고또한 해바라기는 고흐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게 되어버린 것이다.미묘한 톤의 파랑색을 배경으로 강렬한 변화의 노랑으로 모습을 드러낸그것은 바로 고흐 자신이 그의 동생에게 설명했듯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풍부한 변화상을 나타내는 태양에의,또 생명에의 찬가를 부르고 있는 듯 하다.그 자신의 강렬한 생명력을 그는 해바라기를 통해 본..

카테고리 없음 2025.02.16

반고흐 노란 보리밭과 측백나무

타오르듯 요동하며 무성하게 깔린 들의 풀들,역시 불꽃모양을 하고 하늘을 치솟는 올리브색의 측백나무, 휘몰아치는 대기의 하늘, 그러나 화사하게 서로 어울리는 해조의 색채가 억제된 색조에 의하여지극히 조용한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아를에서 생레미로 옮겨간 고흐는 그곳에서아를 시대와는 다른 조화와 성숙을 달성하고 있다.해를 쫓아다니는 해바라기에 공감의식을 가졌던 그가 생레미에서는 힘찬 생장력을 가지고 하늘 속을 뚫고 오르는 측백나무를 주제로 하는 풍경에 열중하고 있다.얼핏보면 그는 격렬한 사나이로만 보이나 그것은 그의 일면일 뿐,이 작품이 갖는 안정감, 섬세함, 조화, 억제는 또 다른 일면으로 부각된다. 고흐 자신도 이 작품을[내가 그린 가장 명석한 작품]이라고 부르고 있다.

카테고리 없음 2025.02.16